posted by dark khan 2017. 1. 9. 16:27

쓰라는 소설은 안쓰고 이게 무슨 짓거리인가는 잘은 모르겠지만 취직때문에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길가에서 한 할아버지가 길건너는거 도와드리고 나니 갑자기 저희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이렇게 한번 썰을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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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경상남도 통영이라는 작은 소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여름철되면 한산대첩축제로 유명한곳이죠. 저희 아버지 할아버지도 당연히 여기 토박이신데 저희 할아버지는....뭐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이십니다.

 

올해 연세가 81살이신데 1936년생이십니다. 그러니까....일제강점기때 태어나신분이죠. 그덕에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등 우리나라의 굴곡진 역사를 직접 눈으로 보고 겪으시며 살아오신분입니다. 뭐 80대 어르신치고는 방안에 컴퓨터며 스마트티비며 최신전자제품이 즐비하며 인터넷에서 물건까지 사실정도로 컴퓨터를 그나이대 어르신에 비하면 잘다루시는편입니다.

 

할아버지가 전자제품에 관심이 많으시거든요. 저희 할아버지는 장남입니다. 그래서 밑에 동생들 공부시키느라고 초등학교만 졸업하시고...아 그때는 명칭이 국민학교였군요. 일하러다니셨는데 지금도 간혹 명절에 할아버지 동생분들이 오시면 저희 할아버지보다 배우기는 더 많이 배우셨는데 컴퓨터로 물건사고 하시는건 좀 서투르신분들이 많더라고요.

 

알고봤더니 80대 어르신이 인터넷쇼핑하는건 흔한일이 아니랍니다...

여튼 할아버지가 전자제품이 관심이 많으시니 저도 자연스레 전자제품에 관심이 많아지더라고요.

 

젊으셨을적에 지금으로 치자면 원양어선? 여튼 멀리 나가서 고기잡는 배의 엔진을 고치는 기술자로 일하셨는데 당시 그실력이 월등히 뛰어나서 다들 저희 할아버지랑 일하려고 했다고 하십니다. 저희 아버지도 손재주는 뛰어나신편인데 전 왜 이모양일까요?

 

여튼 저희 아버지도 장남이셨고 저도 장남입니다. 그러니까 장남이자 장손이 되겠군요. 기억은 안나지만 한 4살? 그때부터 할아버지방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습니다. 할머니가 저희 아버지가 군대에 계실때 돌아가셔서 그후로 줄곧 혼자서 지내셨는데 뭐 할아버지들이 다그렇듯이 첫장손이니 얼마나 귀엽겠습니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항상 할아버지가 장난감이나 먹을걸 사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게 저희 부모님이 불교를 믿으셔서 화요일마다 법회에 가시는데 그럼 집에 저랑 할아버지만 남습니다. 동생은 아직 어리니 부모님 따라갔죠. 그럼 할아버지를 졸라서 500원짜리를 타내 동네 가게로 달려가 과자사먹곤 했습니다. 이름은 기억이 안나는데 카레맛나는 과자를 즐겨먹었었죠. 그러다가 부모님한테 들켜서 혼도 나고 했죠.

 

지금도 그렇지만 90년대 당시에도 3대가 한집에 사는게 드물었던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 덕에 예의범절하나는 톡톡히 배우고 자랐습니다. 그렇게 거의 대학교 들어갈때까지 할아버지방에서 잤었습니다. 중간에 제방이 생겨서 거기서 잠을 잔적도 있지만 뭐 결국 개인 방은 그저 공부할때쓰는게 됬고....

 

여튼 4살때부터 20살이 될때까지 거의 할아버지랑 같이 살아서 그런지 저는 부모님보다는 할아버지가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뭐 제 여동생은 반대더라고요. 제 여동생은 부모님앞에서는 할말 다하면서 할아버지 앞에서는 설설깁니다.

 

사실 저희 할아버지는 제가 어렸을때도 건강이 그리 좋으신편은 못됬습니다. 젊었을때야 젊음 하나로 버텼지만 동생들뿐만 아니라 처자식까지 먹여살리셔야 했던 저희 할아버지는 젊은날에 몸을 혹사시키셨고 그게 늙어서 반동으로 와서 몸이 많이 안좋으신편이었습니다. 어렸을적에 할아버지가 이름모를 약들을 많이 드시는걸 본 기억이 나네요.

 

뭐 지금도 그때보다 늘었으면 늘었지 줄어들진...않은거같은데 아 그래도 줄이긴 했구나 근데 줄였어도 아직도 많은 약을 드시고 계십니다. 기억은 안나는데 제가 5살때 할아버지가 허리수술을 하셨답니다. 현재 기준 21년전이군요. 제가 올해 26살이니 말입니다.

 

그때 허리수술 안하시면 평생 못걷게 될거라고 의사가 말하셔서 아버지가 수술을 결심하셨다고 하네요. 그때 온가족이 다 병원에 있었던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5살인 저는 뭐 말할것도 없고 당시 1살이었던 제동생까지요.

 

여튼 그렇게 잘 살아오시다가 제가 한...21살? 군대가기전이었을겁니다. 할아버지 생신이라 고모 두분 가족이 할아버지 생신축하하러 오셨고 할아버지 모시고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는 횟집에 가다가 할아버지가 넘어지시는 일이 생겼고 그 후로 어찌된건지 다리가 신경이 죽어가면서 마음대로 못걷게 되셨습니다.

 

제가 어릴때는 아파트 경비원일도 하셨고 초등학교 저학년때는 산불감시원일도 하셨는데 말이죠.  20살이후로 아버지께 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기를 자주들었습니다. 갑자기 군대에 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얼마나 놀라셨을까요. 그러시면서 "네 엄마도 언제까지나 건강히 있을거란 생각은 하지마라"라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때까지 부모님은 물론이고 할아버지도 언젠가는 제곁을 떠날거란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 아...잠깐만요 눈물이 흐르네요. 원래 눈물이 많은 체질이라...... 사람은 영원히 살수 없고 언젠가는 죽으니까요. 하지만 그걸 심각하게 생각해본적은 없었습니다.

 

한 7~8살때 외할머니가 당뇨합병증으로 돌아가셨고 막내삼촌이 3중추돌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뭐 그때야 꼬꼬마였으니 뭘알겠습니까만...솔직히 말해서 그리 슬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저희 외가는 경상남도 밀양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1년에 명절때나 뵜죠. 그리고 막내삼촌도 유일한 조카라서 저를 귀여워하셨지만 여수에서 일하시느라 친가에는 그리 자주 못오셨고요.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자주 못봐서 그랬던게 아닐까......

 

그러다가 진짜 할아버지가 돌아가실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은적이 딱 한번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부터 약 3년전 2014년의 일입니다. 저는 2011년 7월에 군대 신체검사에서 7등급판정을 받고 약 6개월후 재검을 받아 4급판정을 받고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했습니다. 지금은 사회복무요원이라고 부르죠. 때는 2014년 9월  2년전 이맘때에 공익근무를 서기 시작해서 드디어 소집해제일만을 바라보고 있던차에 추석이 다가왔습니다.

 

추석을 앞둔 그때 할아버지가 쓰러지셨습니다. 예전에 저나트륨혈증이라는 증세로 입원하신적이 계셔서 솔직히 좀 불안했습니다. 저나트륨혈증이라는건 핏속에 나트륨 그러니까 소금기가 없어서 생기는 병의 하나죠. 여튼 당시에 부모님은 일하러나가셨고 동생은 학교가고 해야 하는 판에 급히 저는 연차를 써서 할아버지 병간호를 했습니다. 보호자없는 병동이라고 간병인이 상시상주하는 병실도 있지만....거긴 너무 경쟁률이 쌨습니다. 근데 어찌 자리가 생기더군요.

 

문제는 거기서 생겨났습니다. 할아버지의 혈압이 갑자기 팍 떨어지면서 정신을 못차리시는겁니다. 의사선생님 말로는 온갖 수단을 써도 혈압이 자꾸 내려간다는겁니다. 부모님은 안계시고 저혼자 발을 동동굴리고 있는데 의사선생님 말씀이 대학병원으로 옮겨야 되겠다고 하시더군요. 안그럼 오늘밤을 못넘길지도 모른다고요.

 

그때 충격먹었습니다. 저런말은 티비 드라마에서나 봤지 현실에서는 들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거든요. 그래서 부랴부랴 아버지한테 전화하고 저녁시간 할아버지는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시고 부모님이 오셨습니다. 의사선생님하고 이야기를 나누시더니 결국 할아버지를 모시고 진주 경상대학병원으로 가기로 합니다. 먼저 아버지가 엠뷸런스에 할아버지랑 같이 타시고 저는 어머니랑 같이 아버지차로 진주로 향했습니다.

 

가면서 어머니에게 "할아버지 괜찮으시겠죠?"라고 하면서 울먹거렸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실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도착해서 중환자실로 갔습니다.

일단 아버지가 할아버지 옆에 붙어계시고 어머니가 "배고프지? 밥먹으러가자"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 걱정에 배가 고픈줄도 몰랐죠 그때가 한 밤9시라서 그냥 병원에 붙어있는 편의점에가서 가쓰오우동이랑 삼각김밥을 사서 먹었습니다. 어머니는 당시 고3이었던 동생때문에 먼저 통영에 내려가시고 저랑 아버지가 붙어있었습니다. 다음날 할아버지의 혈압은 정상치까지 올라왔죠.

 

다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반병동에 옮기고 때마침 추석연휴기간이었지만 아버지는 또 직장에 일때문에 나가셔야 했고 할아버지 병간호는 진주에 사시는 큰고모랑 저희 어머니가 번갈아가면서 하기로 했습니다. 그후로 다시 통영에 내려오셔서 다시 할아버지가 입원하셨고 병문안온 저랑 동생에게 "나때문에 추석 망쳤제? 용돈은 못줄망정..."이러시면서 미안해 하셨습니다. 저랑 동생은 한사코 아니라고 했죠.

 

정작 사경을 헤매신건 당신이셨는데 아들내외랑 큰딸내외 손자손녀에게 폐를 끼친걸 미안해하셨던겁니다. 뭐 그래도 어찌 회복하시고 퇴원하셨죠. 그리고 그 이후로도 몇번인가 입원을 하셨는데.....

 

2016년 12월 중순경 막 대학 기말고사시즌이 다가올때 할아버지가 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시기준 20년전 수술한 허리부위에 뼈가 협착되서 입원하셨다는겁니다. 다행히 수술한 부위에 무리는 없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거라나...12월말에 잠시 볼일이 있어 친가에 갔다가 할아버지 병문안을 갔습니다. 할아버지는 간만에 돌아온 손자를 반겨주셨죠.

 

그리고는 5만원짜리를 하나 주시며 자일리톨껌 심부름을 시키시더군요. 할아버지가 평소에도 인터넷에서 자일리톨 껌을 자주 주문하시던걸 떠올리고는 자일리톨껌을 사들고 왔습니다. 할아버지가 그걸 저보고 먹으라고 주시더군요. 가끔씩 할아버지 옆에서 자일리톨껌을 꺼내 씹곤했는데 할아버지가 그걸 떠올리신 모양입니다. 그러면서 "좀 더 맛있는거 사주고 싶었는데 미안하다"이러시는겁니다. 순간 거기서 울뻔했습니다.

 

진통제를 링거주사로 맞고 계셔도 허리가 계속 아프실텐데도 간만에 집에돌아온 손자에게 맛있는거 하나 못사줘서 미안하다는 투르 말하시니.........

그후로 부산에 돌아온 저는 한동안 그 자일리톨 껌을 씹을때 울면서 씹었습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이젠 뭐 그것도 다먹고 없지만요.

 

최근에 한달간 계속 입원해계시다가 병원에서는 더이상 차도가 없어서 퇴원하셨다네요. 입원비도 장난아니니까요. 계속 아프시다는데 부디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빌어봅니다.